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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大雄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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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은 본사 창건 당시인 신라 헌안왕 3년 (859) 도선국사에 의해서 이루어 졌고 인조 25년 (1647) 허정혜원조사가 중창하였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화재로 전소된 것을 1912년 제4차 중창시 대운화상에 의해 신축되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형식과 겹치마 팔작지붕을 갖춘 총 23평의 건물로서 1976년 주지 진기스님이 기와번와를 했으며, 2005년 주지 상덕화상에 의하여 평방위로 해체보수를 하였습니다.
경상북도문화재 자료 제12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대웅전 불단 (大雄殿佛壇)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한 선정인의 수인을 하고 있는 석가여래불상은 1921년 대운大雲화상이 중국 항주 영은사靈隱寺에서 조성 대웅전에 봉안하였습니다.

약간 살집 있어 보이는 상호, 좁은 어깨를 덮은 통견의 옷주름은 대칭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육계(肉髻)가 없고 계주(髻珠)만 크게 박혀있는 머리, 기름진 얼굴모습, 진홍빛의 가사 안자락 표현등 청나라 말기 중국불상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 대웅전 후불탱화 (大雄殿 後拂幀畵)
金魚로는 당대의 불화가 이혜고, 김계은, 홍한곡이 그린 것으로 부처님의 12제자, 8대보살, 4천왕이 옹호하고 있는 모습으로 당시의 대표적인 불화입니다.

산신탱화, 신중탱화, 칠성탱화, 독성탱화도 모두 같은 畵僧의 작품입니다.

-> 대웅전 편액 (大雄殿 扁額)
근세 명필 성당 김돈희 (星堂 金敦熙 1871-1936)의 글씨입니다.

다층석탑 (多層石塔)

총 높이 453cm 이며, 1938년에 제작된 것입니다.
지대석에 우주(隅柱)없이 한 돌로 이루어진 기단을 이단으로 쌓았습니다. 탑신(塔身)은 전체적으로 가늘고 길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일층 탑신에는 아치형의 얕은 감실(龕室)에 사방불(四方佛)을 돋을새김 하였습니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과 보주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육화료 (六和寮)

화재로 전소된 것을 1912년 제4차 중창시 대운화상에 의하여 신축되었고, 2004년 지형화상과 상덕화상에 의해 해체되어 기둥과 드잡이 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청암사 내 최대 건물인 육화료의 형태는 을(乙)자형에 귀틀을 지닌 건물로서 총 108평입니다.

육화(六和)는 불교의 진리를 깨치고자 하는 수행자들이 서로 친절하고 화합하고 경애하는 여섯가지 법으로서 신(身), 구(口), 의(意), 계(戒), 견(見), 이(利)의 화합을 통한 승가의 실천내용을 말합니다. 육화료는 청암사승가대학의 중심인 대방채로 쓰입니다.

육화료안에 모셔진 높이 57cm의 석가여래좌상은 조성연대가 조선 정조 때로 추측되며 몇 차례의 화재에도 이 부처님만이 타지 않고 그대로 계셨다고 합니다.

후불탱화는 흑탱화로 건륭(乾隆)56년 정조 15년(1791)에 그려진 흑견은니(黑絹銀泥)의 미타탱화입니다.

진영각(眞影閣)

조사(祖師)들의 공덕을 기념하기 위하여 고승의 영정(影幀)과 조사상등을 봉안하는 전각으로서 화재로 전소된 것을 1912년 제4차 중창시 대운화상에 의해 신축되었고, 1989년 지형화상에 의해 해체보수 되었졌습니다.
진품 영탱 22위는 직지사 박물관에 모셔져 있습니다.

정법루(正法樓)

대웅전 전방에 위치한 이 누각은 1940년대 이덕진화상에 의해 신축되었으며, 1992년 지형화상에 의해 보수되었습니다.
건물은 정면5칸, 측면2칸의 맞배집입니다.

중현당(重玄堂)

1992년 지형화상에 의해 신축되었으며, 2006년 상덕화상에 의해 보강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청암사율학승가대학원 건물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범종각(梵鐘閣)

1999년 지형화상에 의해 신축되어진 범종각은 정면 3칸, 측면2칸 규모로 다포계 양식이며 겹처마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錦단청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사물(四物)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사물은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을 말합니다.

보광전(寶光殿)

극락전 서편에 위치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의 작은 법당입니다.
1906년 應雲和尙이 건립하다가 완성을 보지 못하고 入寂하자 大雲和尙이 畢役하였고, 지형화상이 보수 하였습니다.
안에는 사십이수(四十二手) 관음보살좌상과 후불탱화, 신중탱화, 칠성탱화, 산신탱화, 독성탱화, 소종 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1994년 4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28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청동사십이수관세음보살상(靑銅四十二手觀世音菩薩像)
대운화상이 伽倻山 동쪽 龍起寺에서 移運 奉安하였으나 1979년경 盜難, 1992년 6월 7일에 木造로 최완수(불상연구가)님이 도상하고 법성행(유지숙)님의 시주로 志炯和尙이 造成 奉安하였습니다.

극락전(極樂殿)

정면 7칸, 측면 7칸의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측면 2칸은 2층 누대를 설치한 복합 건물입니다. 고종9년 1905년 대운화상에 의하여 건립되기 전 대운스님이 빨간 주머니를 얻는 꿈을 꾸고 한양에 가니 어떤 보살님 한 분이 대시주를 하며 자신을 위해 염불해 죽은 뒤에 염불 해주기를 원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대운스님은 극락전을 건립하고 염불 萬日會를 결성하여 극락전에서 염불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고 합니다.
1993년 지형화상에 의해 해체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안에는 석조 아미타여래좌상(石造阿彌陀如來坐像), 탱화(幀畵), 신중탱화(神衆幀畵)등을 봉안하였습니다.

사천왕문

사천왕은 가람과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으로서, 방위별로 동방 지국천(持國天), 서방 광목천(廣木天), 남방 증장천(增長天), 북방 다문천(多聞天)으로 배치됩니다.

청암사 사천왕문의 원래 위치는 중현당 뒤쪽이었는데 지리적으로 볼 때 소의 목에 해당된다고 하여 지금의 위치로 지형화상에 의해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1976년 주지 비구니 진기스님에 의해 신축되었습니다.

일주문(一柱門)

원주(圓柱)를 나란히 세워 다포계 양식으로 평방과 창방을 짜 올린 팔자지붕의 문입니다.
일주문은 세속의 세계를 벗어나 부처님의 세계를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으로 사찰의 입구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1976년 주지 비구니 진기스님이 신축하였고, 1993년 지형화상이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습니다.

-> 일주문 사액(一柱門 寺額)
일주문의 정면 입구에는 ‘불령산 청암사(佛靈山靑巖寺)’라는 사찰의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사액은 김돈희의 글씨로 예서기가 넘치는 중후한 필법을 보여 그의 작품중 수작(秀作)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당비각(晦堂碑閣)

회당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다포계 형식의 겹처마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안에는 1852년 회암선사 5세손 포봉선사가 지은 회당대사의 탑비가 모셔져 있습니다.

-> 회당대사 탑비(晦堂大師 塔碑)
회당대사의 탑비로 귀부(龜趺, 거북이 모양의 石碑 받침돌)와 이수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수 아래 지신 맨 윗부분에는 ‘會堂大師碑閣’이라는 전액(箋額)이 가로 씌여져 있고 아래에는 ‘有名朝鮮國佛靈山雙溪寺 定慧大師碑冥幷序’라는 비제(碑題)곁으로 비문이 세로 씌여져 있습니다. 탑비 전체의 높이는 173㎝로 영조때 우의정을 지낸 조현명(趙顯命)이 찬하고, 판부사 서명균(徐命均)이 쓰고 김상복(金相福)이 새겼습니다.
글씨도 청경단아한 동국진체풍입니다.

-> 회당비각 편액(晦堂碑閣 扁額)
비각 앞에 ‘회당비각(晦堂碑閣)’이라는 글이 씌여져 있습니다.
성당 김돈희 (星堂 金敦熙)의 글씨입니다.

-> 사적비(事蹟碑)
대운당 비각 옆에 나란히 조성되어 있는 여러 탑비와 사적비들입니다.

그 중에서 불령산 청암사 사적비명은 높이 180㎝로 1914년에 제작된 것으로서, 동국대학교 초대총장을 지낸 근세의 대학승 퇴경 권상로(退耕 權相老 1879 ~ 1965)가 지었습니다.

부도군

-> 01
조선시대의 부도로서, 회암 정혜선사의 부도와 그의 법제자인 용암 채청스님의 부도와 碑가 있습니다.
용암스님의 비문은 법손인 문인 진철 스님이 지었습니다.
예날 청암사에 재물이 넘쳐 스님들이 수행하는데 걸림이 된다하여 그 재운(財運)을 누르기 위해 지금의 부도터에 세웠다고 합니다.

-> 02
고봉당 부도 뒤 석종형의 부도 4기가 일렬로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 고봉당 부도(고봉탑)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으로 화려하게 조각된 고봉 대사의 묘탑(墓塔)입니다.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기단부의 하대석에는 구름문, 중대석에는 사자문(獅子文), 앙련(仰蓮)의 상대석은 사천왕상이 조각된 탑신을 받치고 있습니다. 탑신 받침은 가릉빈가가 조각된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부 위에는 화려한 옥개석(屋蓋石)의 상륜부(相輪部)를 올려 놓았습니다.
이 외에, 고봉당 태수대화상 비명은 높이가 32㎝로 덕민당(德旻堂) 풍수(豊水)가 찬하고, 황악사문(黃岳沙門) 현산(顯山)이 글을 썼습니다.

우비천(牛鼻泉)

지형적으로 소 코에 해당하는 샘으로 이곳에 물이 차면 재물이 들어온다 하여 예 스님들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이곳을 지나쳤다고 합니다. 지금도 오가는 사람들의 목을 축여주는 맑은 샘물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양진소(養眞所)

1940년 이덕진화상이 신축하여, 1992년경 지형화상이 지금의 자리에 축소하여 개축하였습니다.

대운당비각

1970년대 김창득(대운당 유발상좌)에 의해 신축되었습니다.

해우소(解憂所)

1976년 주지 진기스님에 의해 신축되었고, 2014년 관보조로 상덕화상에 의해 해체 개축하였습니다.

-> 근심푸는 곳
2003년 지형화상이 수세식으로 신축하였습니다.
미생물에 의한 정화처리된 용수가 재활용되는 친환경적인 공법이 도입되었습니다.

선열당(禪悅堂)

서별당 자리에 1992년 지형화상이 신축한 건물로 1층은 죽반소(식당)와 2층은 요사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백화당(白華堂)

남별당이라는 옛 건물을 2003년 지형화상이 확장 신축하였습니다.

시은고(施恩庫)

2004년 상덕화상이 신축한 건물로 곡식과 음식물의 저장창고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